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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독일의 신성로마제국이 바티칸 교황청을 침공했을 때 교황을 지키던 병사 대부분이 달아났지만 스위스 근위대는 남아서 침략군과 맞서다가 죽었다. 그 후 지금까지 교황청은 오직 스위스인만 교황 근위병으로 선발한다. 프랑스혁명 때도 당시 루이 16세의 경호를 맡았던 스위스 용병 786명이 왕궁을 지키다 목숨을 잃었다. 왕이 탈출하라고 했지만 스위스 용병들은 “경호 계약을 저버리면 우리 후손들 일자리가 사라진다”며 거절했다. 스위스 루체른에 선 ‘빈사(瀕死)의 사자상’이 그때의 희생을 기리고 있다.
▶스위스 용병을 라이슬로이퍼(Reisläufer)라 한다.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들’이란 뜻이지만 그 속엔 ‘당장의 이득보다 장래의 신용을 소중히 여기는 스위스인’이란 정체성이 담겨 있다. 척박한 산악국가 국민의 절박한 생존 투쟁이 녹아든 단어이기도 하다. 지금은 1인당 소득 10만 달러 부국인데도 스위스인들은 국내에서조차 치열하게 경쟁한다. 나태와 의존은 나라를 퇴보시키는 죄악으로 본다. 심리학자 카를 융은 이런 스위스인의 삶을 ‘만성화된 저강도 전쟁을 치르는 상태’로 규정했다.